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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 명가
명인 명가

역사를 펼쳐보면 애주의 명류인사들이 책속으로부터 걸어나오는데 그들은 별처럼 반짝이며 그 빛은 세상을 밝게 비춥니다. 그들은 자신의 지혜와 문명으로 역사에 길이 남았으며 후세의 인사들을 격려하여, 자손대대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명나라시대 영남 저명 학사 – 중방: 중방은 애주의 가장 큰 자랑입니다. 중방은 황방이라고도 불리우며 자는 중실, 호는 균계(筠溪)입니다. 중방은 어려서부터 “애주신동”이라 불리웠으며 애주 고산소(지금의 애성진 고산촌) 출생으로 명나라시대의 저명한 문학가, 역사학자 및 철학자입니다. 중방과 구준, 해여, 왕홍해, 왕좌 등은 모두 명나라 시대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해남의 명인입니다.

명영락세공 – 배사용: 배사용은 <영락대전>의 편집에 참가한 해남의 유일한 선비입니다.

모용거중: 목용거중은 원적은 지금의 애성 수남촌 출생으로 송나라시기 애주시대 저명한 흥교흥학의 학자입니다. 모용거중은 소흥시대 승사랑, 애주판관, 빈주통판, 소주권농사 등 직무를 담당하였으며 애주에서 임직기간 중 모용거중은 애주에서 유가사상 및 중원문화를 전파하였습니다.


정소재(郑绍材) – 아주의 (광서 27년) 제일 마지막으로 전국에 이름을 알린 거인 (광서 31년 과거제도가 페지됨), 정소재의 중시 논문 ”규구방원지지야”(规矩,方圆之至也)은 철학적 도리가 깊어 널리 전파되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습니다.

남명총병(南明总兵) -- 왕왕황 (현재 아성공북촌 출생)은 아주의 유명한 항청지사입니다.


당고종 간봉연간의 태자세마 겸 시독 – 유나언(刘纳言) 당나라 고승 – 감진스님(鉴真和尚)


북송 태조시기의 재상 – 노다손(卢多逊)


인종시기의 재상 – 정위(丁谓)


남송의 애국장상이며 우사감대어리(재상), 참지정사—조정(赵鼎)


참지정사, 자정학사 – 이광(李光)

비서소감,기서랑 – 호전(胡铨)


송나라 시기 시인 혜홍스님, 원나라 재상—왕사희(王仕熙,)


명나라 광동의 유명한 유가학자 – 모채(莫蔡)


남송 진회의 일당인 양절 전운부사 – 조영(曹泳)


임찬통 (林缵统): 무술(戊戌)군자 - 임찬통은 청나라 말기 애주 관확촌 출생으로 당시 해남지역에서 유일하게 무술변법에 참여한 거인(举人)입니다.


임찬통의 자는 승선, 호는 천민으로 해남성 삼아시 아성진 인사로, 선비가문에서 태어나 어릴적부터 엄격한 유가교육을 받았습니다. 임찬통은 10살에 주유학생원이 되였고 20살에 “군시험(郡试)” 중 1등을 하여 현지 관리의 추천을 받아 “팔품화령”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당시 아주의 천재지변으로 인한 백성들의 어려운 생활을 목격하고 주관리를 질책하였습니다. 청나라 광서원년(1893년) 광동에 순시를 나온 공부 우시랑 왕밍란(汪鸣銮)에게 <아주이폐서>를 올려 관리개선을 제안하였습니다.


광서19년(1893년) 광주 <광아서원>에서 강유위,양계초를 알게 되어 강,양의 “변법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사상을 받아들이고 변법유신활동에 참가하였습니다. 광서 20년, 임천통은 향시를 통과하였습니다. 8월6일, 자희(서태후)가 “무술정변”을 발동하여 광서황제를 감금하면서 신정을 페지하고 담사동 등 “6군자”를 처형하였으며 강유위와 양계초는 일본에 망명함으로써 무술변볍은 실패하였습니다.


변법실패 후 임찬통은 해남 고향에 돌아와 모든 손님을 사절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으며 민국시기 만녕 및 악회 등 곳의 향신과 상인을 동원하여 서사군도를 개발하였습니다. 임천통은 만녕에서 별세하였으며 고향에 묻혔습니다.
 

황도파: 여, 역사학자들은 면방직기술에 거대한 개혁을 진행한 황도파는 한나라의 장형, 원나라의 곽수경, 명나라의 이시진과 함께 중국 4대 고대과학자중의 한 사람입니다. 황도파가 애성수남촌에 온 후 당시 중국의 면사, 면직물의 생산량은 세계 1위였으며 면직물의 수출량은 매년 수백만 필로 동으로는 일본까지, 서로는 유럽, 미국까지, 북으로는 러시아까지, 남으로는 동남아 각국으로 수출되었고,따라서 유럽에는 “중국의 천이 우리의 선조를 따뜻하게 해주었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원나라 송강부 오니경(오늘날 상하이시에 속함) 출생으로, 어릴 적 민며느리로 들어갔으나 학대를 견딜 수 없어 아주(현재의 삼아 아성진)에 유랑하여 40여년간 거주하였음, 여족부녀들로부터 면방직기술을 배우는 동시에 개선하여 선진적인 방직기술을 얻어냈습니다. 원나라 원정연간(1295-1297년) 황도파는 고향에 돌아와 선진적 방직기술을 전수하고 여러 가지 방직전문기구를 제조하였으며 각종 무늬가 있는 방직품을 제작하여 장강유역의 방직업과 목화양식업의 신속한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하여 사람들로부터 천하를 보호한 여 방직기술가로 불립니다. 황도파가 별세한 후 해남과 상하이 백성들은 모두 사당을 세워 황도파를 기념하였습니다.

“잡종벼의 아버지” 원륭평의

원륭평: 1930년생, 1949년8월 중경상휘학원 농학과에 입학. 1953년 서남농학원 졸업. 현재 중국공정원원사, 국가잡종벼공정기술연구센터 및 호남잡종벼연구센터 주임, 국가”868”계획 및 863-101-01“테마 전문가를 담당.


장기간 삼아에서 남반업무에 종사


원륭평은 우리 나라 잡종벼 연구 창시인으로 1964년 처음으로 잡종벼 우세이용을 연구하여 처음으로 벼의 수꽃은 포기로 발육하지 않고, 벼에 잡종우세 현상이 존재함을 발견하였으며 계를 발육시키지 않고 계를 보유하고 계를 회복하는 등 일련의 방법을 통하여 잡종우세를 이용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1975년 원륭평은 팀원들과 함께 기술난관을 극복하여 세계에서 벼의 잡종우세를 성공적으로 이용한 첫번째 과학가로 되었습니다. 원륭평은 우리 나라 잡종벼 연구의 창시자일뿐만아니라 우리 나라 잡종벼 연구 총 설계자이자 제일 중요한 선구자입니다.


원륭평은 세계적으로 “잡종벼의 아버지”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2001년2월19일 중공중앙, 국무원은 국가과학기술장려대회를 거행하여 호남장종벼연구중심 연구원, 중국공정원원사 원륭평에게 200년국가 최고과학기술상을 수여하여 원륭평원사가 전통적 유전학이론을 돌파하여 잡종벼의 새이론을 제기하여 벼재배의 역사적 전환점을 창조한 것을 표창하였습니다.


원륭평 선생님은 2007년4월29일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미국과학원 외국원사로 정식 부임하였습니다.


“멜론대왕” 오명주


오명주: 여, 원예학 전문가. 1953년 서남농학원을 졸업. 현재 신강농과원멜론연구센터 연구원 담당. 신강멜론재배사업의 창시자로 신강 멜론 지방 품종 자원을 수집하고 정리하여 멸종의 위기에 이른 멜론 품종을 보존함.


생태차이를 이용하여 신강과 해남 두곳에서 품종을 선택하여 재배하였으며 성급 품종 심사 또는 인증을 받은 멜론 및 수박 품종은 30개에 달합니다. 멜론의 일년사계절 빠른 속도의 재배 및 육성의 성공적 실천을 창조하였고 세계상 처음으로 단성화율 100%인 우량 자체교배형 멜론을 육성하였으며 이미 생산에 투입되었습니다.


멜론의 빠르고 느린 숙성 계열 품종 및 직접 재배한 품종은 북부신강 및 토하분지에서 재배하는 멜론 품종의 80%를 차지하며 사회를 위하여 수십억의 경제적 효익을 창조하였습니다. 국내에서 제일 처음으로 원생태, 원거리, 다종류재배 및 복사재배 등 기술을 사용하여 품질이 우량하고 병충해를 견뎌낼 수 있는 멜론 새 품종을 육성하여 새로운 품종자원을 창조하였습니다.


아울러 멜론 재배 및 무토재배 기술의 창신체계를 건립하였고 성과학기술진보 특등상 1개, 국가과학기술진보 3등상 1개, 성부급과학기술진보 2등상 2개를 수여받았으며 1999년 중국공정원 원사로 선정되었습니다.


국제 저명 면화 이식 유전자 전문가 곽삼위


곽삼위: 남, 연구원, 박사생 지도교사, 국가급 돌출한 공헌이 있는 중청년 전문가, 전국 우수 과학기술자, 중앙국가기관 “5.1”노동상 획득자, 2005년”중국10대 과학기술기사인물”.


장기간 삼아에서 남반업무에 종사
선후하여 기술발명 및 과학진보상 9개를 획득하고, 중국발명특허 6개를 취득하였는데 그 중 2개는 국가전매특허 장려금 및 우수상을 획득하였습니다. 그가 영도한 과제조는 선후하여 단가항충면을 성공적으로 연구제작하여 우리 나라로 하여금 두번째로 항충면 기술을 독립적으로 연구개발한 나라로 됨에 공헌하였으며, 쌍가항충면을 성공적으로 제작하여 우리 나라 항충면 연구를 세계 선진 연구항렬에 가입하게 하였습니다. 아울러 과제팀이 성공적으로 연구제작한 항충삼계잡종면의 생산량은 25%이상 증가하여 국가급 심사비준을 획득한 항충삼계잡종면 품종으로 되었을 뿐만아니라 중국 과학자들이 삼계포질의 불육성과 저산량의 관련 및 병충해를 방지하지 못하는 난제들을 해결하였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옥수수대왕” 이등해


이등해: 1949년11월18일생, 산동등해종업주식유한회사 동사장, 국가 옥수수공정기술연구센터(산동)주임, 국가 돌출한 공헌이 있는 중청년 전문가로 국무원 특수 보조금을 받음. 1970년부터 삼아남반에서 옥수수연구에 종사하였으며 긴밀형 옥수수를 이용하여 우리 나라 옥수수 고산시대를 시작하였고 그 후 일련의 고산량, 초고산량의 긴밀형 옥수수잡종품종을 개발하였으며 “액단”과 “등해” 계열의 긴밀형 옥수수 잡종 품종 중 25개 종류가 국가 또는 성급 심사비준을 통과하였습니다. 그 중 “액단13호”는 국가 과학기술진보 1등상을 수여하였고 우리 나라 옥수수생산에 대해 중요한 공헌을 하였을 뿐만아니라 거대한 사회적 효과를 창출하였습니다.


분재 예술가 왕계정


왕계정: 1993년12월생, 해남삼아인, 삼아시 도시건설국 부국장을 담임한 적 있으며 현재 이직함. 중국분재예술가협회 이사, 해남성분재예술가협회 부회장, 삼아시 분재협회회장을 담임. 기석, 서사군도 조개 및 애국지사의 서화작품 등을 수집함. 삼아시 분재, 근예, 기석전람에 참가하였고 자체로 “계원전관”을 운영함.


그의 부분적 작품은 <중국기석분재근예화분대관>, <중국분재감상 및 창작> 및 홍콩세계경제문화출판사가 출판한 <계원집>에 수록되었습니다.


1997년 자비로 “삼아시계원예술관”을 꾸렸으며 부지면적은 1000평방미터, 건축면적은 700평방미터로 전국 및 전성 일등상을 수여한 분재 정품, 기석진품, 근예작품 및 고금왕래 애국지사의 서화작품과 오천년 중화문명의 고전작품, 신세기 고전작품, 삼아시 민주혁명사 실물 등을 전람하고 있는데 사람들로부터 “장보관”으로 불리우며 예술성, 감상성 및 교육성을 일체화한 전람관으로 청소년들에게 애국주의교육기지를 제공하였을 뿐만아니라 대외적으로 유람객들에게 개방하였습니다.


중공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전국정치협상회희 주석 이예환이 “계원전관” 시찰시 남긴 기념사진은 중국 개혁성과 대형화전 <금색년화 – 중국노간부 업무 순례>에 수록되었고, 원 중공중앙조직부 부장 여봉은 “계원예술관” 시찰시 왕계정과 함께 기념사진을 남겼을 뿐만아니라 왕계정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왕계정의 서화작품 감상에도 일정한 성과가 있는 바, <중국노인보>, <노인천지>, <해남개발보> 및 <삼아신보> 등 신문매체는 전문 왕계정의 수집작품 및 수집이야기를 기재하였습니다. 전람관에는 돌로 만들어진 “계원영보”라는 인감이 있습니다.
 


 

등록일 : 201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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